16살 소년은 어쩌다 힙합을 발명했나 2019년 5월 28일 by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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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하반기 나의 큰 즐거움은 ‘쇼미더머니 777’ 본방 사수였다. 매주 금요일 술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집 가서 쇼미더머니 재방송이라도 봐야지’라며 만남을 갈무리했다. 나는 힙합 문외한이지만, 쇼미더머니를 보는 건 이제 연례행사가 되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전 세계 미디어를 장악한 힙합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이런 취향의 반영인지, 최근 넷플릭스가 다큐멘터리 〈힙합 에볼루션〉을 추천해줬다. TV 방송계 퓰리처라 불리는 피버디상 수상작으로, 1970년대 태어나 1980-1990년대를 거쳐 세계적 음악이 되기까지 힙합이라는 장르의 격변을 담아냈다.

시작은 뉴욕 남부 브롱크스

1화는 힙합의 탄생을 복기한다. 내가 가장 놀랐던 건 탄생 50년이 채 안 된 힙합의 시작이 놀랍도록 명징하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힙합 파티를 한 날, 힙합 비트의 토대를 만든 사람(DJ), 옆에서 마이크를 잡고 추임새를 넣은 사람(MC), 그 음악에 춤을 춘 사람(B-boying)… 이제는 얼굴에 검버섯이 핀 힙합의 전설들이 나와 1970년대 초 힙합이 탄생한 그 날을 얘기한다.

뉴욕 지도. 동부 할렘가 옆이 남부 브롱크스다.
악명높은 갱단 새비지 스컬스(Savage skulls). 당시 브롱크스 거리는 갱단이 지배했다.

힙합은 할렘가의 음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할렘보다 더욱 절망적인 곳에서 태어났다. ‘남부 브롱크스에 비하면 할렘은 천국’이라는 말이 있다고. 1970년대 뉴욕 남부 브롱크스는 강도, 상해, 약물 등 미국 최악의 우범지대였다.

특히 방화는 1년에 만 건 이상 발생했다. 지역 건물주들에게 화재 보험금이 임대료보다 더 좋은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 건물주와 세입자는 도시에 넘쳐나는 갱들에게 방화를 사주했고, 이 지역 어딘가에선 늘 건물이 탔다. 당시 근무했던 소방관은 ‘항상 희뿌연 연기가 도시에 자욱했다’고 회상한다.

‘The Bronx is burning’
폐허가 된 브롱크스를 방문한 지미카터

갱들이 장악한 거리에는 사이렌 소리가 가득했다. 방화와 범죄로 불안에 떠는 도시에서 흑인의 삶은 절망적이었다. 바로 이 지역에서 힙합이 터져 나왔다.

세계 최초 힙합 DJ, 쿨 허크

힙알못인 나는 힙합 하면 에미넴, 우탱 클랜 같은 랩퍼 이름부터 먼저 떠올리지만, 태동기 힙합은 DJ의 음악이었다. 힙합의 창업자(Founder of Hip-Hop) 또는 힙합의 아버지(Father of Hip-hop). DJ 쿨 허크(DJ Kool herc)의 수식어다. 자메이카 출신인 허크는 1973년 남부 브롱크스 한 지하 오락실 파티에서 인류 최초로 힙합을 만든다. 그의 나이 16세였다.

오른쪽이 DJ 쿨 허크
현재 모습

Hip-hop Birthday!

시작은 이렇다. 새 학기를 맞은 신디 캠벨(Cindy Campbell)은 새 옷이 필요했다. 돈 벌 궁리를 하다 본인의 생일 파티를 입장료를 받을 파티로 기획한다. 파티 공간은 살던 세즈윅가 1520번지 아파트의 지하 오락실을 빌리고, 가족들에게 일손을 요청했다.

힙합의 성지, 세즈윅가 1520번지

어머니가 음식을 만들고 아버지가 마실 것을 구해왔다. DJ는 친오빠에게 부탁했다. 이때 부탁받은 클라이브 켐벨, 바로 쿨 허크가 아버지의 음향 장비를 빌려 음악을 틀었다.

‘DJ KOOL HERC PARTY’ 파티 초대장

힙합 등장 이전 1970년대는 디스코 음악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화려한 정장과 실크 드레스를 입고 경쾌한 춤을 추는 음악은 남부 브롱크스 흑인들과 맞지 않았다. 쿨 허크는 펑크와 R&B 음악으로 파티를 열었다. 지역 흑인들은 간주(Break)의 드럼 비트에 맞춰 전신을 쓰는 과격한 춤을 췄다. 쿨 허크는 이들을 브레이크 보이즈(Break boys)라 불렀다.

브레이크 댄스를 추던 브레이크 보이즈는 이후 비보이로 불린다.

쿨 허크는 브레이크 보이즈의 흥을 돋우기 위해 전에 없던 DJ 기술을 선보였다. 최초로 두 개의 턴 테이블을 나란히 놓고,번갈아 틀며 리듬감이 강한 브레이크 부분을 무한 반복했다. 가사 없고 무거운 베이스의 음악은 춤추기에 매우 좋았고, 사람들은 이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에 열광했다. 이날 쿨 허크가 시도한 기법은 힙합 사운드의 토대가 된다.

그 전에는 턴 테이블을 하나만 썼기 때문에, 한 노래가 끝나고 다음 노래 틀기까지 1분 정도 간격이 있었다고 한다.
쿨 허크는 지금은 익숙한 더블 턴 테이블을 처음 썼다.
쿨 허크가 DJ 기술을 쓰면 장비가 쉽게 가열돼 선풍기로 식혀야 했다.

최초의 MC, 코크 라 록

여기에 쿨 허크는 본인의 고향인 자메이카 음악 특색을 섞는다. 토스팅 기법(Toasting)이라는 건데, 전통적으로 자메이카 DJ들은 즉흥적으로 음악 중간에 보컬을 섞었다. 이날 파티에서도 쿨 허크의 친구가 마이크를 들고 중간중간 말로 관객 호응을 유도했다. 이 사람이 바로 최초의 MC로 평가받는 코크 라 록(Coke La Rock)이다.

코크 라 록과 쿨 허크

처음에 그는 친구들의 이름을 외치는 것으로 시작했다가, 의미 없지만 듣기 재밌는 말들을 멘트로 사용했다. 그가 자주 썼던 ‘You rock and you don’t stop’ ‘Hotel, motel, you don’t tell, we won’t tell’ 같은 멘트는 지금도 자주 MC들이 사용한다.

코크 라 록

힙합의 토대

쿨 허크의 파티는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 영향력은 대단했다. 이날 지하 오락실에 모인 300명은 충격을 받고 자기 동네로 돌아가 음향 장비를 구해 쿨 허크의 음악 기법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날 파티에 훗날 ‘힙합의 레전드’로 불리는 그랜드 마스터 플래시, 아프리카 밤바타가 있었다. 또한 힙합의 4요소가 이 시기에 자리 잡는다. DJ와 랩, 비보잉, 그래피티까지!

또한 힙합 파티는 좋은 사업이 되며 흑인 사회를 바꾸었다. 이후 일부 흑인 갱단은 폭력성을 거두고, 예술성을 띈 음악 집단으로 바뀌었다. 뉴욕 흑인 사회에 힙합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그렇게 1970년대 힙합의 토대가 마련됐다.

힙합의 전설들

DJ 비트에 보컬이 얹어지고(랩), 당시 거리 미술(그래피티)과 그 노래에 추던 춤(비보잉)과 결합하며 힙합은 하나의 거대한 문화 흐름으로 자리 잡는다. 뉴욕 최하층민 흑인들의 메시지는 무거운 드럼 비트를 타고 곧 서구 사회에 울려 퍼졌다.

원문 김연수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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